오늘은 어제 우연히 본 SF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소 허술한 구성과 논란을 불러 일으킬 부분도 눈에 띄었지만, 배역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안정된 화면에 힘입어, 오랜만에 따스하고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The Swan Song
영화 제목은 ‘백조의 노래’…… 몰랐는데 이 영화는 2021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한다.
일단 먼저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영화 ‘백조의 노래’ 줄거리
영화는 열차에 탄 흑인 주인공, 캐머런 터너를 비추며 시작한다. 객실 통로를 지나는 로봇을 통해 가까운 미래라는 게 암시된다.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보는 로봇에게 캐머런은 초콜릿을 구입한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허락도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초콜릿을 먹는다. 캐머런은 황당함을 애써 감추며 여자를 향해 미소짓고 초콜릿을 한조각 먹는데, 여자는 그런 캐머런을 아랑곳 않고 다시 초콜릿을 먹더니 이내 초콜릿을 두고 일어선다. 여자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캐머런은 자신의 초콜릿이 자기 자켓 속주머니에 있음을 깨닫는다. 테이블 위의 초콜릿은 그녀의 초콜릿이었던 것이다.
^^ 이 부분…… 익숙하지만, 매번 미소짓게 되는, 마이클이 좋아하는 클리세이다. 뒤늦게 깨닫고 민망함에 헛웃음을 짓는 이 장면. 사람은 언제나 착각과 오해, 작은 실수에 싸여 매 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다음날 캐머런은 열차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 자신이 오해했음을 사과하며, 자신이 스케치한 그녀의 초상화를 건넨다. 그 그림을 인연으로 캐머런은 그녀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캐머런과 너무도 같은 취향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다. 평생 외롭게 살았던 캐머런에게 그녀와의 결혼과 사랑스런 아이의 탄생을 통해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 모처럼 찾아온 행복 앞에 갑자기 쓰러진 캐머런은 자신이 말기암 환자라는 걸 알게 된다. 아내와 아들이 느낄 슬픔과 상실감을 우려한 캐머런은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자기는 몰래 죽으면, 가족들이 계속 행복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고 복제인간을 의뢰한다. 자신의 모든 기억을 저장한 복제인간. 하지만 정작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 ‘잭’을 보며, 이 선택이 과연 옳은 건지 확신이 서는 한편 죽는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서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복제인간에게 이유 없는 적개심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통해 캐머런은 아내와 아들과 작별하는 시간을 가지려 하지만,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황급히 복제인간이 투입된다. 한참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캐머런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연구소를 빠져나와 집으로 숨어들어 자신의 작업실에 앉는다. 인기척에 캐머런이 왔음을 직감한 잭은 캐머런이 가족과 작별하는 시간을 보내게 하고 그동안 자신은 옷장에 몸을 숨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캐머런은 잭에게 아내와 아들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를 부탁한다. 영화는 잭이 보낸 영상메시지를 보는 캐머런의 모습을 비추며 끝난다. 잭은 캐머런의 아내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아내는 캐머런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평생 외롭게 살던 캐머런에게 캐머런 당신은 사랑받고 있는 존재이며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주려는 잭의 배려였던 것이다.
영화 ‘백조의 노래’에서 눈여겨 볼 대목
이 영화에서 마이클이 눈여겨 본 건, 두가지였다.
하나는 캐머런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캐머런을 어떻게든 위로하려는 잭의 인간적인 성숙도가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기암 환자였던 캐머런이 착용한 의료도구였다.
캐머런은 자신의 부재로 인한 아내와 아들의 슬픔을 스스로 못 견뎌 복제인간을 만들 생각을 한다. 영화에서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 시대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상 복제인간이 법적으로 자유롭게 허용되는 분위기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캐머런은 복제인간을 만들고 자신을 대체하려는 과정에 노심초사하는 것일 것이다. 캐머런은 섬세하게 여리고 착한, 분명 매력적인 남자다. 그래서 가족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캐머런의 마음은 십분 이해되고 감동을 받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느끼게 될 상황을 자기 의사대로 막고 조정하려는 캐머런의 선택은 오만한 판단일 수 있다. 결국 고심하던 그가 선택한 건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복제인간이었고, 그 복제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기억을 주입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그 복제인간의 이름은 캐머런이 아니라 엄연히 다른 사람인 잭이란 사실이다. 잭은 캐머런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 캐머런의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고, 캐머런이 원했던 것처럼 캐머런의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혹시 캐머런처럼 암에 걸리지 않도록, 취약한 캐머런의 유전정보를 개선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병에 걸리지도 못한다. 착한 남자 캐머런의 인간적 성숙도는 곧 죽을 자신과는 달리, 건강하게 아내와 일생을 보내게 될 잭을 질투하는 태도에서 보여지듯이, 마치 암에 취약한 그의 유전정보처럼 미숙함을 보인다. 외롭게 성장했지만 열심히 살았고 재능도 있었던 캐머런이 착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캐머런은 분명 착한 남자이며,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다. 하지만 복제인간 잭은 자신이 잭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둔 캐머런만을 섬세하고도 꼼꼼히 배려하고 위로한다. 마지막 장면….. 캐머런에게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이자 기쁨이었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영상메시지로 만들어 보내준 잭의 태도는 그 어떤 장면보다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번뇌는 일단 제껴두고 당장은 마치 헌신적인 로봇처럼, 죽음을 앞둔 캐머런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위로하려 집중하는 진짜 어른 남자 같은……. 인간적 성숙도. 난 이 부분에 감동받았다.
두번째는 혼수상태에 빠져든 캐머런에게 부착된 의료장비다. 침상에 누운 캐머런에게 부착된 의료장비는 코에 살짝 걸린 투명한 호흡기가 전부였다. 이 제품이야말로 인류에게 꼭 필요한 미래 의료기기가 아닐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말기암이든 여러가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온 몸에 호스들과 전자장비로 둘러싸여 두려움에 떤다. 아프다는 사실보다는 이렇게 이질적인 도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그래서 온전히 죽음을 대비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환경이 아쉬운 상황에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괴로워한다. 캐머런이 착용한 이렇게 심플한 보조장비야말로 정말 우리가 원하는 미래 의료기구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지구별에 온갖 축복 속에 태어났다면, 이 지구별을 떠나는 죽음 또한 축복 속에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배우고 느껴야 한다고 마이클은 생각한다. 충분히 기능을 하되, 최소한으로 간소화된 의료장비를 통해 우리는 그 시간을 보다 수월하게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잔잔한 웰메이드 SF 영화, ‘백조의 호수’
이 영화는 ‘벤자민 클리어리’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대 과학과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하는데는 그의 시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영화의 남녀주인공인 마허살라 알리와 나오미 해리스의 안정적인 호연은 이 영화의 완성도에 큰 기여를 했다. 한마디로 사랑과 이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감동의 웰메이드 SF 영화’다. 특히나 요즘같이 점점 쌀쌀해져 가는 늦가을에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SF 장르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특히 부담감 없이 따스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