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속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SF 소설은 호기심과 탐험으로 관통되는 개념의 특별한 장르로서,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에 대한 생생한 상상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우리 SF 애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 모두는 각각의 사연과 각자가 영향받은 사회분위기에 휩쓸리며 현재와 미래를 막연하게 인식하곤 한다. 우리보다 너무도 생생하게 미래를 꿈꾸고 미리 본 미래를 너무도 매혹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해 줄 뿐, SF 작가들 또한 일반인들처럼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SF 작가들 또한 각자가 느꼈던 사회적 불안과 열망 그리고 반성을 작품에 반영해 왔고, 시기별 SF 작품들은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줄 것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SF 주요 작품에서 표현된 미래에 대한 묘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SF 소설에서 그리는 미래의 유토피아적 주제와 디스토피아적 주제를 살펴보면서, 왜 SF가 인류에게 꼭 필요한 장르인지를 설명하고 싶다.
초기 SF 작품 시기 (1600~1800년대)
이 시기 작품들은 이성과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낙관주의에 힘입어 유토피아적 비전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무조건적인 유토피아 기조는 아니었다. SF는 다른 장르에 비해 도전적이고 일탈의 열망을 보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추종은 기본적으로 없다. 사족을 붙인다면 개인적으로 난 이게 바로 SF 장리만의 장점이자 SF 애호가로서 자랑스러운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뮤얼 버틀러와 같은 작가들은 무분별한 기술 발전의 함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당시에 만연한 유토피아기조를 비판했다.
- 토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1602) :
초기 유토피아 작품인 캄파넬라의 비전은 이성과 공동 생활이 지배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한 탐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 사무엘 버틀러의 “에루혼“(1872) :
버틀러의 풍자적 시각은 기존의 진보에 대한 관념에 도전하며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제시하고, 무분별한 혁신의 결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평가받는다.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시기 (1920년대~1940년대)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는 어수선한 분위기와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친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와 사회분위기는 SF 문단에 디스토피아적 내러티브로의 전환에 분명하게 영향을 끼쳤다. “메트로폴리스“와 “멋진 신세계“는 산업화와 전체주의의 비인간화 가능성과 씨름하며 당시의 어두운 사회적 두려움을 반영했다고 평가받는다.
- 테아 폰 하부의 “메트로폴리스“(1927) :
폰 하부의 분열된 사회에 대한 비전은 거대한 도시에서 특권층 엘리트와 억압받는 노동자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묘사하며 디스토피아적 주제를 시나리오로 표현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
헉슬리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유전공학과 정신 변화 유도 약물을 통해 사회적 조화가 유지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진보되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불임인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전후 낙관주의와 우주적 초월성 갈망기 (1950~1960년대)
이 시대는 전후 유토피아적 꿈과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갈망이 사회 곳곳에 만연했다. 우주적 초월성이 융합된 모습을 보여 준 시기이기도 했는데, SF 소설 또한 자비로운 외계인이 인류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한다는 아서 C. 클라크의 “어린 시절의 종말“에서 볼 수 있듯이 초월적 낙관주의가 만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냉전기이기도 했는데, 그래선지 유토피아적 세계관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복잡하게 공존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 아서 C. 클라크의 “어린 시절의 종말”(1953) :
클라크는 자비로운 외계인의 인도를 받아 진화하는 인류의 미래를 묘사하는데, 유토피아의 도전과제와 행복과 자유의 본질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토피아적 기조를 띤다.
-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1953) :
사회적 순응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금지하는 미래 사회가 묘사된 이 책을 통해 브래드버리는 검열과 지적 억압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뉴 웨이브와 사회 변화 관심기 (1960~1970년대)
이 시기는 과학법칙에 대한 관심보다는 심리, 언어, 인류학 등 실험적이고 인간의 내면이라는 우주를 탐구하는 뉴웨이브 물결이 지배한 시기였다. 실험적이고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가진 SF 작품들이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 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1969) :
르 귄은 이 책을 통해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는 행성을 소개하며 유토피아적 이상과 젠더의 복잡성에 대한 미묘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1974) :
이 소설은 두 행성의 대조를 탐구하며 무정부주의 사회에서 유토피아적 요소와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이버펑크와 기술에 대한 불신 시기 (1980~1990년대)
80년대 초반 인류는 두 번의 석유파동을 겪으며, 엄청난 경제 충격과 대량실업으로 사회 불안이 퍼져나갔다. 이 때 등장한 사이버펑크 장르는 기술의 영향력 확대 등 사회에 내재된 막연한 불안이 반영된 결과였다. “뉴로맨서“, “스노우 크래시“와 같은 작품은 무분별한 기술 발전과 기업 권력의 결과로 형성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묘사했다.
-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 :
사이버펑크의 시초로 여겨지는 이 소설은 가상 현실 세계를 탐험하는 해커들의 이야기를 통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탐구하며, 기술에 대한 불안을 반영했다고 평가받는다.
-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시”(1992) :
스티븐슨의 작품은 사이버펑크의 미학과 풍자적인 논평을 결합하여 민영화로 인해 거버넌스 다시 말해 지배구조가 분열되고 사회가 붕괴된 미래의 미국을 탐구하고 있다.
21세기에 대한 실망과 미래 비전 시기 (2000년대 – 현재)
급속하게 변할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21세기는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생명공학과 환경 파괴로 초점이 옮겨진 시기였다. 마거릿 애트우드와 파올로 바시갈루피 같은 작가들은 인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현대인의 우려를 반영하여 유전공학으로 형성된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탐구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지난 시기 사이버펑크가 다시 각광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다른 포스트를 통해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 마거릿 앳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2003) :
앳우드는 이 소설을 통해 유전공학이 잘못되어 황폐해진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주며, 생명공학과 기업 통제에 대한 현대인의 우려를 반영했다.
- 파올로 바시갈루피의 “와인드업 걸”(2009) :
바시갈루피의 작품은 생명공학과 환경 파괴로 인해 디스토피아적 사회가 형성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견제받지 않는 기업의 권력이 초래할 미래를 탐구했다.
위에서 살펴 본 연대기별 SF 소설들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SF는 본래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과학기술 그리고 탐험과 일탈이라는 특징은 물론이고, 사회가 가진 집단적인 두려움과 열망을 그 어떤 장르보다 실감나게 살필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SF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래에서 유토피아적 주제와 디스토피아적 주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이런 다양하고 치열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미래가 구현되고 있는 자체가, 인류가 우리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그 잠재력으로 인해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바로 왜 SF가 인류에게 꼭 필요한 장르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