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위대한 SF ‘듄’의 아버지




오늘은 SF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인 ‘듄’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프랭크 허버트

1.  프랭크 허버트, 그의 시작

프랭크 허버트(1920-1986)는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는 8살 때 이미 전체 사촌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열정은 평생 지속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신문사 사진기자, 스피치라이터, TV 카메라맨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다. 이러한 경험들은 후에 ‘듄’이라는 거대한 서사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2.  작가가 되기까지

허버트는 1939년부터 여러 신문사에서 일하며 글쓰기 실력을 연마했다. 특히 시애틀 타임즈에서 일할 당시, 환경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생태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후에 ‘듄’의 중요한 테마가 된다.

그의 첫 SF 단편은 1952년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점은 1959년, 오레건 주의 모래 언덕에 대한 기사를 쓰러 갔을 때였다. 이 취재는 ‘듄’의 첫 영감이 되었다.

프랭크 허버트6

 

3.  SF를 뛰어넘은 ‘듄’의 세계

‘듄’은 단순한 SF가 아니다. 정치, 종교, 생태, 철학이 복잡하게 얽힌 대서사시다.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둘러싼 이야기는 인류의 생존, 권력, 신념 등 깊이 있는 주제들을 다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듄’이 당시 SF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SF가 주로 기술적 진보와 우주 개척을 다룰 때, 허버트는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 메시아적 영웅의 위험성, 권력의 본질, 종교의 역할 등,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 것이다.

‘듄’은 출간 당시 SF 독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었다. 단순한 영웅담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복잡한 정치적 음모, 종교적 예언, 생태학적 통찰이 뒤얽힌 이야기를 만났다. 이것은 충격이었고, 동시에 혁명이었다.

더구나 ‘듄’은 놀라운 선견지명을 보여준다.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종교의 정치적 이용, 인공지능의 위험성 등, 허버트가 50여 년 전에 제기한 문제들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되었다.

소설 ‘듄’ 초판본

듄 초판본
소설 ‘듄’ 초판본

국내 번역 출판된 소설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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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듄’ 1 구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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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듄’ 6 구매링크

 

4.  작가의 다른 작품들

허버트는 ‘듄’ 시리즈 외에도 여러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다.

– ‘산티아고의 의식’

– ‘초록의 두뇌’

– ‘도시어’ 등

이 작품들 역시 그의 독특한 세계관과 철학을 담고 있다.

 

5.  창작의 동반자를 가진 행운아, 프랭크 허버트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점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고독과 스트레스 속에서 작품을 쓸 때, 허버트의 창작 과정은 달랐다. 왜 그랬을까?

첫째, 그의 아내 베벌리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닌 창작의 동반자였다. 허버트는 매일 저녁 그날 쓴 원고를 아내에게 읽어주었고, 함께 토론했다. 그는 작가들이 흔히 겪는 고립감과 중압감에서 벗어나 아내로부터 인정과 응원을 받았다.

둘째, 가족 전체가 그의 이야기 세계에 참여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때로는 예리한 질문으로 이야기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연스러운 피드백 과정이 되었다.

셋째, 허버트는 스토리텔링을 ‘일’이 아닌 ‘공유’의 과정으로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이야기 들려주기의 즐거움이, 성인이 된 후에도 그의 창작 과정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런 특별한 창작 환경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허버트가 가진 특별한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그는 완벽주의자였지만, 동시에 협력적인 성향을 가졌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작품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또한 그의 가족들, 특히 아내 베벌리의 문학적 감각과 이해력도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베벌리는 단순한 지지자가 아닌, 예리한 비평가이자 편집자였다. 이는 매우 드문 행운이었다.

프랭크 허버트 부부

 

6.  프랭크 허버트가 우리에게 남긴 것

프랭크 허버트는 위대한 작품이 반드시 고독한 투쟁의 결과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협력이 더 풍성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듄’의 세계가 이토록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것은, 그것이 한 사람의 상상이 아닌 여러 사람의 지혜와 상상력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허버트는 창작이 즐거운 공유의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 아닐까?

프랭크 허버트 집무실에서

프랭크 허버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다.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창작이라는 여정이 반드시 고독한 길일 필요는 없다는 교훈을 함께 남겼다.

특히 ‘듄’을 통해 그가 보여준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예견하고 있었다.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 종교와 정치의 결탁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인류의 진화와 적응에 대한 깊은 고찰 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깊이 있는 작품이 고독한 천재의 산물이 아닌, 가족과의 따뜻한 교감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라고 했던 허버트의 말은, 어쩌면 그가 가진 특별한 창작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세계, 그것은 분명 작가에게 주어진 특별한 행운이었을 것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1986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과 창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앞으로 소개할 ‘듄’의 세계는, 그의 이런 특별한 창작 여정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프랭크 허버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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